드라마 <귀궁>은 설화적 정서를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낸 환상극이다.
이 글은 김지연, 육성재, 김지훈 세 배우의 연기 여정을 따라가며, 각 인물이 지닌 심리와 서사적 깊이를 되짚는다.
촬영장 비하인드까지 녹여낸 이 기록은 드라마 그 너머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여리는 제 안의 그림자였어요.” 김지연은 ‘여리’를 ‘사람들이 보기엔 단단하지만 사실은 금이 간 유리잔’이라 표현했다. 영매로서의 운명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여리는 숙명과 자유 사이에서 매순간 스스로를 쪼갠다.
“여리는 저항해요. 운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저는 그게 너무 인간적이라 끌렸어요.” 김지연은 여리를 연기하며 그저 ‘강한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보여주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한 과제”였다고 했다.
촬영 전부터 그녀는 민속신앙, 무속적 세계관, 여성 제의자에 관한 수십 편의 자료를 스크랩해 분석했다. “그 인물은 대본이 아니라 서사로 와 닿았어요. 시대와 싸우고, 신과 타협하고, 사랑을 품는… 누군가의 이야기.”
그녀는 촬영 중에도 무속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매번 ‘기도하듯’ 연기를 준비했다. “무대도 카메라도 잊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여리였어요. 울면, 무릎이 시리더라고요.”
육성재가 연기한 ‘강철이’는 윤갑의 몸을 빌려 존재하는 이무기다. 즉, 육체는 한 사람, 의식은 다른 존재다. “연기라는 게 늘 그렇지만, 이건 정말 두 명이 하나의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육성재는 첫 리딩부터 ‘이중적 인격의 균형’을 고민했다. “윤갑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강철이라는 존재의 고유한 외로움을 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했죠.”
그는 감정신보다 오히려 “무표정한 신이 더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감정을 숨긴다는 건, 실제로는 더 깊은 파동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런 복합성을 보여주려면 극도로 절제된 연기를 해야 했어요.” 촬영 현장에서는 종종 상대 배우의 대사보다 자신의 ‘침묵’을 더 오래 리허설했다고 한다. 여리(김지연)와의 재회 장면에서 그는 의도적으로 호흡을 길게 끌며 눈빛으로 대사를 대신했다.
“사람이란 존재가 가끔 말보다 ‘기억’으로 말할 때가 있잖아요. 윤갑과 강철이는 모두 여리와 과거를 공유한 존재니까, 그 감정을 언어 밖에서 끌어내고 싶었어요.”
“팔척귀는 괴물이 아니라, 상처였어요.” 김지훈은 팔척귀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분노를 오랫동안 품은 혼령”으로 해석했다. 그는 캐릭터의 전사를 상상하며 매일 ‘한 줄 일기’를 썼다. “그날 팔척귀가 어떤 감정에 잠식됐는지를 기록하면서 인물의 정서를 구축했죠.”
그가 팔척귀 분장을 마치고 거울을 처음 봤을 때, 그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고 한다. “거울 속 얼굴이 너무 서글펐어요. 공포스럽다기보다… 되돌릴 수 없는 원한의 집합 같았어요.”
실제 김지훈은 팔척귀의 감정선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종종 ‘무대 아래’로 사라졌다고 한다. 촬영 사이 쉬는 시간에도 그는 조용한 공간에 들어가 대사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복수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팔척귀는 다만, 거기 머물러 버린 거죠. 그런 인물의 슬픔이 시청자에게도 전달되길 바랐어요.”
귀궁의 세트장은 CG 위주가 아닌 ‘실존하는 민속 공간’으로 연출되었다. 전통 돌담길과 초가집, 그리고 굿판이 펼쳐진 제의 공간까지 모든 장면은 실제 세트와 자연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비 오는 날, 돌담에 앉아 리허설하다가 귀신 분장한 배우를 못 알아보고 놀랐던 적도 있어요.” 육성재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여름에 찍은 한밤의 산신 장면에서는 김지연이 진짜 모기떼와 싸우며 촬영했다. “굿을 하는 신인데 모기를 참는 것도 의식의 일부처럼 느껴졌어요.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몰입됐죠.” 한편, 배우들이 직접 참여한 1~4화 코멘터리 영상에선 서로의 애드리브를 맞추기 위한 장면 리허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드러났다.
“귀신들이 둘러싸인 장면에서도 김지연 배우는 끝까지 눈빛을 놓지 않았어요. 그게 이 드라마의 진짜 ‘영기’ 같았죠.” 김지훈은 그렇게 회상했다.
<귀궁>은 퇴마극도, 단순 로맨스도 아닌, 혼과 존재를 둘러싼 인간의 깊은 사유를 그린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기억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한 이들’을 통해 복원해낸다. 배우들은 단지 캐릭터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그 인물로 살아냈다. 영매로서 운명과 싸운 여리, 인간이 되려 했던 이무기 강철이, 복수를 벗어나지 못한 팔척귀. 이들은 모두 잊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 존재들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낯선 세계를, 믿게 만드는 것이 배우의 몫이라면—우리는 그 조각들이었죠.” 김지연의 이 말은 <귀궁>의 정체성과 가장 닮아 있다. 결국 우리는 그 조각들을 모아, 한 편의 전설이 완성되는 장면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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